이지러졌다 피는 달
좀처럼 화장기를 들이지 않는 고현정의 얼굴은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리듬을 타고 이지러졌다 피는 달과 닮았다. 그녀가 한번 지은 표정은 물이 빠지듯 서서히 사라지고 대화할 때면 거울이 되어 마주앉은 이의 표정을 그대로 비춰낸다. 그러나 그 활짝 열린 얼굴과 마주앉아 인터뷰하는 기자는 때때로 장갑을 낀 채 악수하는 촉감을 느낀다. 그녀의 떠들썩한 결혼과 이혼,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드리워진 침침한 공백은, 거대한 반점과 같아서 거론하기도, 못 본 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나왔다가 방송하고 그러다 재벌가에 시집갔다가, 이혼하고 나와서 다시 연기를 하고. 제 전적이 너무 지루한 코스잖아요. 나쁘게 보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죠.” 단숨에 요약해버리는 쪽은 고현정이다. <여우야 뭐하니>의 대사가 스친다. “창피하면 씩씩해져야죠. 가만있으면 더 창피하잖아요.” 작품 수도 적고 아직 내가 배우인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고현정은 연기의 각론을 건드리면 오래 쟁여둔 티가 역력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스물다섯살에서 서른네살까지 손과 발이 연기하기를 멈춘 10년 동안 그녀의 눈과 머리는 참으로 게걸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아직도 갈증을 다 풀지 못한, 우듬지까지 물이 오른 배우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배우 고현정 : 기사 :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