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인간 노무현의 퇴장을 두고 <다크 나이트>를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영웅으로 죽든지, 악당으로 살아남든지”라는 대사를 유독 기억해낸다. 어떤 사람은 영웅에 노무현 대통령을 악당에 다른 누군가를 대입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문제의 대사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며 지금의 상황 위에 겹쳐 두고 있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현실 정치나 ‘대중’이라는 실체 없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영리하고 폭 넓은 텍스트다. <다크 나이트>가 펼치는 담론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이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단순히 비교될만한 어느 쪽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오히려, 폭탄 스위치를 배 밖으로 던져버리고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이며 인간으로 남길 선택한 영화 속 범죄자를 닮아있다. 죄가 있고 없고의 차원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중요한 건 영화 속 범죄자가 부끄러움을 아는 자였다는 데 있다. 그의 부끄러움은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인간 본성 앞에서 작동됐다. 그는 자신의 양심뿐만 아니라 남의 양심, 나아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고 건사해내기 위해, 다소 감상적일지라도 자기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희생의 길을 자처한다.
먼 기억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인기 좋은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모욕을 주는 일은 일종의 국민 스포츠에 가까웠다. 그의 역할을 둘러싼 모두의 기대치가 달랐다. 어른스러움이라는 세상의 원칙에 위배되는 듯 보이는 화법과 행동, 정책결정과정에서 번번이 되풀이되는 승부사 기질, 그 끝의 결과들이 숱한 기대치들과 결부되어 극심한 호불호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역할에 회의했을망정 그의 선의나 됨됨이, 동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하거나 낙관하는 쪽이 대다수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의 애도 물결은 평가치의 역전이 아니라 연장이라 할만하다. 기대치에 닿지 못한 역할에 대해 삿대질했던 꼭 그만큼의 연민이 거리에 분향소에 가득하다. 그 사람은 배트맨이나 조커마냥 당위를 지켜내기보다 인간으로서 주변 세계에 가져야 할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위해 자멸했다. 드문 선택이다. 그 인간다움이, 어쩌면 노무현을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상징화된 영웅으로.
출처:다크나이트와 노무현 ozzyz review 허지웅의 블로그 : 다크나이트와 노무현#4154517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