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11, 2008

바람의 화원 (2008) 신윤복 - 조선시대 해방된 여성?

신윤복은 타의에 의해 '남장여자'가 된 캐릭터이니, 조작된 남성성에 의해 여성성이 억압되어 있었고 그것이 나중에 해방된다는 일반논리는 그럴싸해보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게 그렇게 단순합니까? 일단 드라마 신윤복이 과연 억압된 사람처럼 보입니까? 암만 봐도 이 캐릭터는 감추는 게 없습니다. 윤복의 허세 떠는 성격이나 바람둥이와 같은 태도는 그 사람의 원래 개성입니다. 자신의 여성적인 본성은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거의 여과 없이 터져 나오고 있고요. 물론 남장이라는 설정에 따른 스트레스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복은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 중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오히려 부당할 정도로 건강하지요. 정조시대 사회적 규칙을 멋대로 위반하면서 그런 자유를 얻었으니까요.

게다가 이 작품에서 [미인도]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여성성이 과연 건강한 것입니까? 조선 시대의 평범한 여인네들에게 강요된 '여성성'은 사회적 편견의 산물이었고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신윤복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누렸던 자유는 거의 누리지 못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신윤복이 직접 언급하지만) 그들은 새장 속의 새였습니다. 정향과 같은 기생들은 보통 평범한 여인네들에 비해 어느 정도 행동의 자유가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죠. 그렇다면 과연 그 규격화된 여성성은 신윤복이 도달해야 할 지향점이 되어야 할까요? 그건 오히려 모든 면에서 퇴행일 것입니다.

비전형적인 성격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성숙'이라는 핑계를 대며 사회적 규칙에 복종하면서 원래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멀쩡하고 자유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작정하고 죽이려는 건지 이해가 안 돼요. [바람의 화원]에서는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원작에서도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잖아요. 전 신윤복(또는 김홍도)=샤라쿠 아이디어는 괜한 콤플렉스의 반영 같아서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그게 차라리 낫습니다. 지금 신윤복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자신을 마음대로 재정의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 위치를 정말 버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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